"집을 먼저 비워야 보증금을 준다"는 집주인과 "보증금을 받아야 나갈 수 있다"는 세입자. 보증금반환소송에서 자주 부딪히는 장면입니다. 법은 어느 한쪽이 먼저 하라고 정하지 않고, 두 의무를 서로 맞바꾸는 관계로 봅니다. 이 관계를 이해하면 언제 집을 비울지, 언제부터 지연손해금을 청구할지, 판결 뒤 무엇이 달라지는지가 한 번에 정리됩니다.
두 의무는 맞바꾸는 관계입니다
민법 제536조 제1항은 쌍무계약의 한쪽 당사자가 상대방이 이행을 제공할 때까지 자기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대법원은 임대차 기간이 끝났을 때 세입자가 집을 넘겨줄 의무와, 집주인이 연체차임 등 인도할 때까지 생긴 채무를 정산하고 남은 보증금을 돌려줄 의무가 이런 동시이행 관계에 있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1977. 9. 28. 선고 77다1241 판결).
그래서 보증금을 받지 못한 세입자가 계속 머무는 것은 그 자체로 불법 점유가 아닙니다. 대법원은 세입자가 동시이행 항변권을 행사해 집을 계속 점유한 경우, 집주인이 보증금 반환을 제공했다는 등의 사정을 증명하지 못하면 세입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1995. 7. 25. 선고 95다14664 판결). 다만 같은 판결은 실질적인 이익을 얻지 않았을 때 부당이득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어서, 종료 뒤에도 평소처럼 거주했다면 그 기간의 사용 대가가 정산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살면서 소송할 수도, 비우고 소송할 수도 있습니다
세입자는 집에 머문 채로 보증금반환소송을 낼 수 있습니다. 이때 판결은 흔히 "집을 넘겨받는 것과 맞바꾸어 보증금을 지급하라"는 형태로 나옵니다. 반대로 이사를 해야 한다면 먼저 집을 넘겨주고 돈만 청구하는 길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나은지는 이사 일정, 대항력·우선변제권을 유지할 필요, 지연손해금의 출발일에 따라 달라집니다. 보증금반환소송을 머문 채로 진행한다면 관리비와 공과금 납부를 끊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종료 뒤의 사용 대가를 두고 다툼이 생겼을 때 밀린 관리비까지 겹치면, 보증금에서 빠지는 금액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입니다.
| 선택 | 장점 | 확인할 점 |
|---|---|---|
| 머물면서 소송 | 점유와 주민등록으로 권리를 계속 유지 | 판결이 인도와 맞바꾸는 조건으로 나올 수 있음, 사용 대가 정산 |
| 비우고 소송 | 이사 일정 확보, 집주인의 지체 책임이 분명해짐 | 이사 전에 임차권등기가 기입되었는지 확인 |
이사를 먼저 해야 한다면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하고 등기사항증명서에 등기가 실제로 오른 것을 확인한 뒤 주민등록을 옮기는 순서를 지키세요. 등기를 마친 뒤에는 대항요건을 잃더라도 이미 얻은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이 유지됩니다(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3 제5항).
집을 넘겨줄 준비는 '알려야' 효력이 있습니다
집주인에게 늦게 돌려준 책임을 물으려면, 세입자가 집을 넘겨주는 이행을 제공했어야 합니다. 대법원은 세입자가 이사를 나가면서 그 사실을 집주인에게 알리지 않았다면 인도의 이행제공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대법원 2002. 2. 26. 선고 2001다77697 판결). 짐을 뺐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이날부터 열쇠를 넘겨줄 수 있다", "현관 비밀번호를 이렇게 전달하겠다"처럼 집주인이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전한 기록이 있어야 합니다. 이 날짜는 지연손해금 계산의 출발점과도 이어지므로 지연이자 계산 문서를 함께 보세요.
예를 들어 퇴거 날짜를 미리 문자로 알리고, 당일에는 빈 집의 사진과 영상을 찍은 뒤 열쇠나 비밀번호를 넘기는 방법을 다시 알리는 식으로 기록을 두 번 남겨 두면 좋습니다. 집주인이 열쇠 받기를 거부했다면 그 거부도 기록해 두세요. 받지 않겠다는 반응 자체가 세입자가 인도를 제공했다는 점을 보여 주는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판결 뒤 경매에서는 먼저 비우지 않아도 됩니다
맞바꾸는 조건이 붙은 판결은 집행 단계에서 세입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민사집행법 제41조 제1항은 반대의무와 동시에 집행하는 내용의 집행권원이라면 채권자가 자기 의무를 이행했거나 제공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집행을 시작할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2 제1항은 여기에 예외를 두어, 세입자가 보증금 반환 판결 등에 따라 바로 그 임차주택에 경매를 신청할 때에는 집을 먼저 넘겨주지 않아도 경매를 시작할 수 있게 했습니다.
다만 경매로 팔린 뒤 배당금을 실제로 받으려면 그 집을 매수인에게 넘겨주어야 합니다(같은 조 제3항). 경매를 여는 단계와 돈을 받는 단계의 조건이 다르다는 점을 구별해 두세요.
자주 묻는 질문
Q. 사소한 수리가 남았다는 이유로 보증금 전액을 붙잡아 둘 수 있나요?
A. 대법원은 세입자가 하지 않은 원상회복이 사소하고 그 비용도 적은데 이를 이유로 훨씬 큰 남은 보증금 전액의 반환을 거절하는 것은 신의칙에 어긋나 허용되지 않는다고 본 사례가 있습니다(대법원 1999. 11. 12. 선고 99다34697 판결). 그 비용 부분과 나머지 보증금을 나눠 보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Q. 이사 나간 뒤 현관 비밀번호만 문자로 알려 줘도 넘겨준 것으로 보나요?
A. 집주인이 들어가 점유를 넘겨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린 것이라면 인도를 제공한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개별 사정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으니 전달 날짜와 집주인의 수신 여부가 남는 방법을 쓰고, 같은 날 집 상태 사진도 남겨 두세요.
정리
비울지 머물지는 정답이 정해진 문제가 아니라 일정과 권리 유지 사이의 선택입니다. 어느 쪽이든 인도 준비를 알린 날짜를 기록해 두는 것이 공통 출발점이고, 나머지 질문은 보증금반환소송 안내 첫 화면에서 이어집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이며, 개별 사건의 결론은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근거: 민법 제536조 제1항 [시행 2026. 3. 17.][법률 제21454호],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2 제1항·제3항, 제3조의3 제5항 [시행 2026. 1. 2.][법률 제21065호], 민사집행법 제41조 제1항 [시행 2026. 2. 1.][법률 제20733호], 대법원 1977. 9. 28. 선고 77다1241 판결, 대법원 1995. 7. 25. 선고 95다14664 판결, 대법원 1999. 11. 12. 선고 99다34697 판결, 대법원 2002. 2. 26. 선고 2001다77697 판결 — 국가법령정보센터(법령·판례) 2026-10-20 확인